인생이모작 후반기를 살아가는 시니어들에게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의 힘을 불어넣는 정신 힐링의 장소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초야에 묻혀 묵묵히 시니어들에게 새로운 열정과 힘을 불어 넣는 이 시대 장인이 있다.
주인공은 한병천(72) 시니어. 그는 범상치않는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자신만의 철학을 지킨다. 한병천 시니어는 예능에 대한 재능을 돈벌이 기회로 연결시키는 것을 당연시하는 세상 상식과 다른 삶을 살아오고 있다.
한병천 시니어는 “‘Sing Along’ 나이든 시니어들에게 결코 낯설지않은 ‘다함께 따라부르기’를 통해 가곡의 노랫말이 주는 정신적 힐링의 가치와 동요부르기를 통해 세태에 찌든 영혼을 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병천 시니어는 17일 행주산성 소재 고양시인재교육원 앞 강변 ‘무궁화 열린음악회(회장 신철호, 단장 이기석)’ 버스킹공연장에서 기자와 만나 마음 속 진솔한 이야기를 전했다.
기자가 ‘아트싱어'(Art Singer)란 호칭을 제안했으나, 본인은 ‘피아노의 장인, 한병천 시니어’란 표현이 좋다고 했다. 그의 음악 세계가 궁금하다면, 시니어들의 영혼을 힐링시키는 공간 ‘깐띠아모’를 찾으면 된다.
다음은 ‘피아노의 장인, 한병천 시니어’와의 일문일답.
Q. ‘깐띠아모’ 이름이 생소한데.
우리가 ‘깐띠아모’란 간판을 내걸 땐 인터넷상에서 검색이 안 됐어요. 지금은 너무 흔한 용어가 됐네요. ‘Cantiamo’는 이탈리아어로 ‘다함께 노래하다’란 뜻입니다. 영어로는 ‘Sing Along’이지요.
Q. 라이브가 아주 좋습니다.
저는 원래 라이브음악만 50년을 넘게 해왔어요. TV출연이나 연예 활동을 권하는 유혹도 많았지만, 그건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이 굳건했어요. 남을 의식하고 사는 삶도, 남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도 영 저의 체질엔 맞질 않거든요.
지금 부른 노래는 싱얼롱 프로그램 진행에 앞서, 한 두곡 정도 ‘여는 노래’로 인사 겸 시작을 알린 거죠.
Q. 본 프로그램이 궁금한데.
원래 우리 민족은 옛부터 모든 노래를 함께 부르는 전통이 있었지요. 아마도 노래반주기 출현으로 전국민이 가수가 된 것 같아요.
굳이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지만 덜 친화적인 현상인 것 만큼은 분명하구요. 각기 편향된 장르와 분별력 없는 선곡으로 노래를 즐기고 있어, 전문적인 프로그램이나 계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실정이지요.
따라서 노래의 순기능을 위한 솔루션으로 ‘좋은 노래 다 함께 부르기’ 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고, 그 전용공간으로 싱얼롱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Q. 자리가 없다는 소문도 있습니다만.
코로나 전엔 그랬지요. 여고나 여대 동창들이 주를 이뤘지요. 버스터미널 2곳을 끼고 있기에,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재경 동창회와의 모임을 하는 분들도 꽤 있지요.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대화할 수 있는 동기 부여로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고, 추억의 함박스테이크나 옛 노래들 하나 하나에 웃음을 자아내며, 잠시 순수해질 수 있는 기회로 딱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거죠.
Q. 레스토랑을 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우리 국민들은 현재 정서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이나 국가가 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TV만 켜면 시끄럽고,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이 없어요.
전대미문의 흉칙한 사건 소식이나 넘쳐 나오고요. 1년 내내 시 한 수 읽지 않는 국민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우연한 현상은 아닐 것이란 생각입니다.
좋은 노래는 좋은 시와 좋은 음악의 결합물을 말하는것입니다.
‘깐띠아모’가 엄선한 좋은 노래들로 2시간 노래하고 나면, 한 권의 시집을 읽은 효과를 보는 겁니다. 그 이상의 좋은 힐링은 없을 겁니다.
Q. 꼭 ‘싱얼롱’이어야 하나요?
걸음도 그렇잖아요. 여럿이 함께 걷다 보면 별로 힘든 줄도 모르고 걷듯, 노래도 마찬가지죠. 사실 혼자 부르기에 부담스러웠던 노래라도 얼렁뚱땅 함께 부르다 보면, 즐기는 노래가 될 수도 있는 거죠.특히 동요, 가곡 등은 더욱 그렇죠.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에 다니듯, 노래도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에 참여하면 더 좋은 효과를 누릴 수 있죠.
Q. 싱얼롱 선곡의 기준은?
싱얼롱 선곡에 있어 주요 포인트는 우선 가사의 문학적 가치나 자연 친화적인 노래가 우선입니다. 뭐니뭐니해도 나이를 먹은 사람들에게는 옛 추억의 노래가 좋지요. 치매 예방에도 좋다 하구요. 새록새록 떠 오르는 수 십년 전의 추억이, 시니어들에게는 새로운 것이기도 하죠.
싱얼롱 노래들은 동요, 가곡, 팝송, 외국민요, 가요 등 모든 장르의 명곡들을 골고루 발췌해 실시합니다. 스크린을 이용해 직접 제작한 자막을 띄우지요.
Q. 앞서 말한 ‘분별력 없는 선곡’이란 무슨 뜻인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우중충한 노래들을 좋아하고 또 많이 불러요. 노래를 부르기 전부터 얼굴을 잔뜩 찡그려가며 감정을 쥐어짜죠. 사람까지 우중충해질 수 밖에 없죠.
세계 평균 대졸자 비율은 7%에 불과합니다. OECD국가들도 40%미만에 불과합니다. 2위인 일본도 55%죠. 1위인 우리나라 대졸자 비율은 무려 80%가 넘습니다. 어느 나라든 학력 수준에 따라, 취미활동이나 음악 취향은 완연히 달라집니다.
우리나라 기지촌만 하더라도 미군들이 이용하는 카페는, 100%가 음악으로 차별되는 걸 쉽게 볼 수 있지요. 고학력군이나 장교들은 역시 차분하고 수준 있는 음악을 즐겨 듣고, 저학력층일수록 요란한 음악들을 선호하기에, 자연적으로 카페의 구분이 지어지죠.
하지만 우리나라 고학력자들의 취미활동이나 음악적 취향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가사에 둔감한 것이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클래식이나 서정적인 음악을 선호하고 또 선도해야 할 우리나라 지식층의 인문학이나 문화적 소양이 많이 뒤처져 있다는 방증일 수 있겠죠.
Q.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면?
우리 사회엔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Recreation, 여가선용 또는 재충전) 개념의 프로그램이 태부족입니다. 고작 있다 해도 재충전은 커녕, 춤곡이나 광적(狂的)인 노래 위주의 오락 프로그램이 대세지요. 중독성만 가중시켜, 우울증 위험도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경쾌한 노래와는 엄연히 구분돼야 하구요.
기획된 싱얼롱은 프로그램 자체가 국민의 정서 함양을 위한 맞춤 프로그램입니다. 싱얼롱을 비롯한 건전프로그램 개발이나 보급이 절실히 요구 되는 실정입니다.
Q. 노래의 순기능이란?
노래의 순기능은 순화와 정화입니다. ‘좋은 노래 다함께 부르기’는 순화나 카타르시스 작용을 함으로써 정신적,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힐링 프로그램입니다.
좋은 노래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고, 면역력을 높여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지요.
Q. ‘한국에서 가장 빠른 인간 반주기’란 이야기도 있던데.
워낙 어릴 적부터 피아노 라이브 또는 반주자로 활동을 많이 하다보니 자연적으로 메모리도 많아지게 되고, 언젠간 악보 없이도 반주가 가능하더라구요. 몇 천곡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싱얼롱 시에는 악보를 찾는 시간이 생략되기 때문에 엄청 유리하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키(Key)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야 하구요.
언젠가부터 스스로 싱얼롱 진행자로선 내가 적임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소명 의식까지 갖게 됐어요. 따져 보니 35년이 넘었습니다만, 지금도 즐거워서 하고 있어요.
Q. 후계자 양성은?
글쎄요. 그동안 엄청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혹시 적임자가 있다면, 이 레스토랑을 그저 물려줄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찾지를 못하고 있네요. 여러 가지 재능이 요구돼, 엄두를 못내는 것 같은데, 언제라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Q. ‘싱얼롱’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해방 후 우리나라의 싱얼롱 활동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까지 서울YMCA를 중심으로 진행됐으나, 그 대상이 장안 일부 대학생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에, 대부분 국민들에게 생소하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지요.
이 싱얼롱은 주 대상이 60대 이상으로 한정되는 특성도 있어, 시니어 프로그램에 속하는 것도 취약점이죠. 요즘 중년들이나 젊은이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았기에 대중가요 말고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에요.시니어 세대는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어도, 정서적인 면에서는 행복했던 세대라 생각합니다만, 작금엔 엉뚱한 문화에 편승하고들 있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원래 ‘깐띠아모’의 주 고객들은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신상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이젠 고령자들이 돼 운신이 어려운 분들도 많습니다.
조금 아랫 세대로의 릴레이가 이뤄져야 하지요. 홍보라곤 해 본 적이 없어, 몰라서 못 오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새로운 고객 창출을 위해 본격적인 홍보를 해 볼 작정입니다.
Q. 향후 계획이 있다면?
가을부터는 봉사 차원으로 대국민 홍보 및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싱얼롱 버스킹’을 하려고 준비중에 있습니다.
요즘엔 적당한 장소도 많아, 좋은 성과가 기대돼요. 혼자하는 공연도 아니고, 최소 20~30명 정도 기본 참여자는 필요한 행사이기에 미리 지원자도 모집이 해야겠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Q. 일반 대중에 대한 당부라면?
이젠 난리법석 떨어야 잘 놀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좀 안정되고 세련된 문화생활을 향유했으면 합니다. 노래는 반드시 ‘좋은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기자가 방문한 ‘깐띠아모’는 한번 들어가면 4시간을 함께 즐기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여느 업소 같으면 테이블 당 10회전도 가능한 시간이라 수익성을 따지는 상업적 관점으로는 해석이 불가하다.
추억의 메뉴 함박스테이크를 비롯해 주인장 한병천 시니어의 라이브로 이어지는 추억의 음악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술판 분위기로 흐를 수 있는 저녁에는 문닫고, 일요일은 쉰다. 평일에만 오전 11시 30분 개점해 오후 3시 영업을 종료한다. 깐띠아모. 상업적 논리를 역행하는, 그러나 시니어들에게는 영혼의 천국인 이상한 나라의 ‘샹글리라’ 같은 곳이다.
[깐띠아모 싱얼롱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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