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이 석교(돌다리)는 고양의 일산, 지도, 송포 지역 등 한강 연안 서부지역 사람들이 서울을 오가던 교통로로 이용됐다. 이 다리를 이용해 각종 농산물, 땔감 등을 현천동, 수색 모래내를 거쳐 서울로 내다 팔았다.
다리의 구조는 네모진 돌기둥 24개로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장방향으로 긴 교판석 110개를 2열로 놓았다. 다리의 전체적인 모양은 길게 북-남쪽으로 이어져 약간의 곡선을 이루며 매우 견고하고 세밀하게 구축돼 있다. 다리의 규모는 총길이 17.74m, 넓이 3.57m, 높이 2.48m다.
다리에 관한 기록은 1755년 영조 연간에 발간된 고양군지(高陽郡誌)에 보인다. 당시엔 해포교(醢浦橋)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해포교는 오늘날의 석교가 아닌 목교였다.
강매동 석교 중간부분 교판석(통행이 가능하게 교각 위에 놓은 석재)에는 ‘강매리교경신신조(江梅里橋庚申新造)’라고 뚜렷하게 음각된 글자가 보인다. ‘다리의 이름은 강매리교이며, 경신년에 새로 놓았다’는 뜻이다. 경신년을 따져보면 1980년, 1920년, 1860년이 해당된다. 많은 학자들은 1920년이라 추정한다.
마을 이름 ‘강매리’는 대한제국의 리동합병정책에 따라 1910년 8월 25일 강고산리와 매화정리가 합쳐쳐져서 생겼다.
이 강매동 석교는 축조 연대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조선시대 전통적인 교량축조 방법의 맥을 잇고 있다. 고양시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의미에서 그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특성이 비슷한 석교로는 서울 성동구에 있는 보물 제 1783호 ‘서울 살곶이다리’가 있다.
주변에 제2자유로의 신설로 건널 수 있는 길이 막혀 통행로의 역활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꽃축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