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소현세자파의 뿌리, 경안군과 임창군묘

소현세자(1612-1645)는 인조반정으로 임금이 된 인조의 첫째 아들이다. 정묘호란 때 전주지역에서 분조(전쨍 때 임시로 세운 조정)를 이끌었다. 병자호란(1636년) 패배로 인조의 삼전도 굴욕(1637.1.30.) 이후 항복조건에 따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소현세자빈 강빈까지 청나라에 인질로 갔다. 소현세자가 청나라 생활에 적응을 잘하고 있고 청나라 조정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인조는 왕위에 대한 위협을 느꼈다.

청나라에 인질로 갔던 소현세자는 1645년(인조 23년) 영구 귀국했다. 하지만 오랜 인질 생활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으며, 체질도 강건하지 못해 많은 병을 앓았다. 귀국한 지 얼마
안돼 학질에 걸려 불과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34세였다. 소현세자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다. 그가 오랜 고생 끝에 본국에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병에 걸리고, 의관들 역시 함부로 치료하다가 세자가 급사하자 온 나라 사람들이 슬프게 여겼다고 한다.

경안군묘는 분성군부인 허씨와 합장되어 있다. 묘 둘레는 170cm로 뒷면은 중축(重築)된 붉은 벽돌 곡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묘 앞 우측에는 묘비, 중앙에는 상석·향로석, 그 좌우에는 망주석·석인·문석인을 배치해 놓았다. 묘비는 숙종 30년(1704) 3월 아들 임창군이 건립한 것으로 이수(螭首)와 장방형 비좌를 갖추었고, 총 높이 196cm, 폭 60cm, 두깨 26cm의 규모이다. 사진=우성윤

경안군 이회(慶安君 李檜)는 인조의 손자이며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 소현세자가 1645년 사망한 후, 어머니 민회빈 강씨마저 1646년 인조의 수라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로 별궁에 안치되었다가 인조의 미움을 받아 반역죄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아 죽었다.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의 사망 이후 큰형 이석철(당시 12세), 작은형 이석린(당시 8세)과 함께 4세의 어린 나이로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한다. 석철은 결국 1648년 음력 9월 18일, 그곳에서 장독으로 죽었고, 석린도 같은 해 음력 12월 23일, 병으로 사망했다. 석견은 형들과는 달리 살아남아 1650년 삼촌인 효종이 즉위한 이듬해 강화도로 옮겨갔다가, 1656년에 귀양에서 풀려났다.

1659년 윤 3월 4일, 이석견은 경안군으로 복권되었고 승헌대부라는 관직도 받았다. 이때 허씨와 결혼하여 임창군, 임성군 2명의 아들을 두었다. 경안군은 오랜 유배 생활로 인해 겪은 고초와 스트레스로 6년 후인 1665년 온천으로 목욕을 가다가 병이 나서 실려온 지 얼마 안 되어 22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한다.

임창군묘, 임창군 이혼(臨昌君 李焜)의 자는 선경이며 인조의 증손으로 경안군의 맏아들이다. 경안군 묘역 언덕 아래에 있으며 묘는 응천군부인 박씨와 합장된 것으로 묘 둘레는 200cm이다. 낮은 봉분의 묘 앞 우측에 묘비, 중앙에는 상석·향로석·장명등 그리고 그 좌우에는 망주석·문석인이 늘어서 있다. 묘비는 영조 원년(1725) 7월에 건립된 것으로, 팔작지붕형의 옥개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고, 높이 215cm, 폭 82cm, 두께 34cm 규모다. 비문은 박사수가 글을 짓고, 임창군의 아들 이감이 글씨를 썼다. 사진=우성윤.

경안군은 부인 허씨와의 사이에서 임창군 이혼(臨昌君 李焜), 임성군 이엽(臨城君 李熀)을 두었다. 차남인 임성군은 이석철의 양자로 입적되었는데, 후사를 보지 못하여, 임창군의 차남 밀남군(密南君) 감(堪)을 또 양자로 들여서 소현세자파의 대가 이어질 수 있었다. 현재의 소현세자파는 모두 3남인 경안군의 후손이다.

임창군은 숙종 치세 초반인 1679년에 “왕실의 종통(宗統)인 임창군을 임금으로 세워야 한다”는 흉서(凶書)로 제주도에 유배당한다. 1684년에 풀려났고, 왕족으로서의 지위도 회복했다. 그러나 차남 임성군은 6년 후 26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이인좌의 난으로 유명해진 밀풍군은 임창군의 장남이다.

경안군 가계도, 도표=우성윤 작성
우성윤 기자
우성윤 기자
현재 고양시니어신문 기자, 숲해설가와 문화해설가(궁궐해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은행에서 30년 근무 했고, 전쟁기념관 도슨트, 성남문화해설사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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