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제관지는 조선시대 벽제역에 있던 객사, 벽제관이 위치했던 장소다. 고양시 덕양구 벽제관로 34-16(고양동)에 위치. 1965년 2월 2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사진=우성윤

고양 벽제관지(碧蹄館址)는 조선시대 중국 사신이 한양에 들어오기 하루 전에 반드시 유숙한 벽제역의 객사, 벽재관이 있었던 터다.

벽제관은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나 1428년 11월 조선 세종 때 크게 개축됐다. 당시 벽제관에는 동헌(東軒)과 서헌(西軒), 문묘(文廟), 남별관(南別館) 등의 부속건물이 있었다.

벽제관은 우리나라에 오는 중국 사신의 공용숙박시설이 있었던 곳이다. 중국 사신은 한양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벽제역의 객사인 벽제관에서 유숙했다.

중국 사신들은 벽제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예를 갖추어 서울에 들어가는 것이 관례로 돼 있었다. 또한 이곳이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으로 가는 우리나라 사신들도 여기서 머물며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하기도 했다.

벽제역 부근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이끄는 군대가 왜군과 싸워 대패했던 ‘벽제관전투’가 있있던 곳이기도 하다.

본래 고양시의 고읍치(古邑治)는 현재의 벽제관지(碧蹄館址)에서 서북방으로 5리 정도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인조 3년(1625)에 지금의 위치로 읍치를 옮겼다. 이때 새로 세운 객관이 지금의 벽제관지에 있었다. 당시 규모는 면적 1265평, 건물은 601평에 달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부가 헐렸고, 한국전쟁으로 건물과 담장이 소실됐으며, 1960년 대에는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삼문 마저 허물어졌다.

현재는 건물의 기둥을 받치던 돌의 일부만 남아 옛흔적을 찾기가 힘들지만 지리적인 위치로 인한 전투와 한중외교사의 역사적인 의미가 인정돼 1965년 문화재로 지정됐다. 고양시가 2021년 정밀발굴조사를 시행, 이전까지 몰랐던 담장과 부속건물 유구를 발견했다.

벽제관지 전경. 안내판 사진 캡쳐=우성윤

 

벽제관 건축 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