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8년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서삼릉(西三陵) 자리에 설립되었으나 1537년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의 장지가 서삼릉으로 정해지자 향교는 대자동의 고읍마을로 이전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25년에 현재의 고양동 대자산 기슭에 옮겨 재건됐다. 대성전, 동·서무, 내삼문(內三門) 등은 조선시대 말기의 건축 수법을 보여 주며 여러 차례의 보수가 이루어졌고 명륜당, 전사청(典祀廳), 외삼문 등은 한국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84년에 신축했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해 중국과 우리나라 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고,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는 두 가지 기능을 담당했던 곳이다. 지금의 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이 중앙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다면, 서당을 마친 유생들이 중등교육을 받는 지방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향교는 지방관청에 속한 관학기관이고, 서원은 사학기관으로 기능이나 목적은 같았으나, 성격의 차이가 있었다. 조선 중기 이후 서원(書院)이 발달하자 기능이 약화되었다.
구역 내 주요 건물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5성(공자, 맹자·증자·안자·자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동무와 서무에는 송조2현인 정자, 주자와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정기적으로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명륜당과 대성전으로 이어지는 내삼문 왼쪽 언덕 위로 단청이 되지 않는 소박한 전사청이 있다. 이 건물은 제례 때 전사관이 집무하면서 제사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점검 하는 곳으로, 이들 건물 중 가장 오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고양향교는 교육적 기능은 없다. 고양시 유림들이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봄·가을에 공자를 제사 지내는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행사가 없는 평상시엔 향교문은 잠겨져 있다. (재)경기도향교재단 고양향교(031-967-1992)가 관리하고 있다.
고양향교 오른쪽애는 최근에 건립된 중남미문화원이 자리 잡고 있어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려져 있다. 고양향교를 중심으로 반경 2km 내에는 벽제관지, 최영장군묘, 조선시대 대군들의 묘와 40여곳의 고양시 문화유적들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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