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릉.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의 능.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에 있다. 사진=우성윤

서삼릉(西三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희릉·효릉·예릉 등 3개의 능(三陵)이다. 1970년 5월 26일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하다.

중종 계비 장경왕후의 무덤인 희릉(禧陵)이 처음 들어선 이후 인종과 인종비 인성왕후 무덤인 효릉(孝陵), 철종과 철종비 철인왕후 무덤인 예릉(睿陵)이 조성되면서 3개의 능이 한양 서쪽에 있다 하여 ‘서삼릉’이란 명칭으로 불리게 됐다.

희릉

희릉은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 능이다. 장경왕후(1491~1515)는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가 아버지 신수근의 문제로 폐위되자 1507년 왕비가 됐다. 1515년 인종을 낳았지만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원래 태종의 헌릉 서쪽 언덕에 있었으나 1537년(중종32)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중종(中宗)의 능은 명종 17년(1562년) 이곳에서 정릉(靖陵,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으로 천장됐다.

예릉

예릉. 조선 제25대 왕 철종(哲宗)과 정비 철인왕후(哲仁王后) 김씨의 능이다. 사진=우성윤

예릉은 조선 제25대 왕 철종(哲宗)과 정비 철인왕후(哲仁王后) 김씨의 능이다. ‘강화도령’이라 불리는 철종(1831~1863)은 사도세자(장조)의 증손자로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헌종이 죽고 난 뒤 왕위를 이을 후사가 없어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되었다.

19세에 왕이 된 철종은 처음 3년 동안 순조의 비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이후 직접 정치를 했다. 하지만 안동 김씨의 세도가 극에 달했으며, 왕권은 이미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뒤였다.

철종의 치세동안 국가재정의 근본을 이루는 삼정이 문란해져 백성들은 삶이 궁핍해져 삼남지방에서 대규모 농민반란이 일어났고, 동학과 천주교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1858년 철인왕후(1837~1878) 사이에 원자를 낳았으나 곧바로 죽었고, 왕위를 이을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 궁인 범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 영혜옹주가 박영효에게 출가했다.

효릉

효릉. 인종(1515~1545)과 인성왕후(1514~1577)의 능. 사진=문화재청국가문화유산포털
서삼릉 매표소 창에 게시된 효릉 출입구 안내문자. 사진=우성윤

효릉은 조선 12대 왕 인종(1515~1545/재위 1544~1545)의 왕릉으로 1545년 조성되었으며, 인성왕후(1514~1577)가 1578년 이곳으로 천장돼 쌍릉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서삼릉 권역에 위치하지만 출입구는 다르다. 효릉은 남한에 소재한 조선왕릉 40기 중 마지막으로 2023년 9월 일반에 공개됐다.

관련기사 : 일반에 마지막 개방된 조선 왕릉, 효릉(서삼릉 내)

기타 묘역

◇ 소경원(昭慶園)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의 원이다. 1665년(인조 23) 소현세자가 죽자 이곳에 안장하고 소현묘(昭顯廟)라고 칭하였으나 1870(고종 7)년 소경원(昭慶園)으로 개호했다.

현재 서삼릉 비공개 구역에 있다. 철종의 예릉 뒷문으로 한참 동안을 걸어가야 나오고, 소경원의 주위에는 농협 젖소개량소 및 뉴코리아 컨트리클럽, 제30기갑여단이 둘러싸고 있다.

◇ 효창원(孝昌園)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의 원이다. 1786년(정조 10년) 고양 율목동(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효창묘(孝昌墓)를 조성했는데, 1870년(고종 7년) 효창원(孝昌園)으로 격상되였고,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5년 5월에 현 위치로 이장했다.

◇ 의령원(懿寧園)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장남 의소세손의 원이다. 1949년 북아현동 지금의 중앙여고, 추계예대 자리에서 이곳으로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