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나라를 지킨 경주 문무대왕릉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뤘다. 또한 병부, 창부 등 중앙관청을 창설하였고, 지방통치를 위한 5소경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 체제 완성의 기초를 제공했다.

문무왕이 재위 21년만인 681년에 승하하자, 유언에 따라 동해에 장례를 지냈다. 왕의 유언은 불교 법식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것이였다. 이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입구에 있는 바위 위에 장사 지냈으므로 이 바위를 ‘대왕암’, ‘대왕바위’라고 불렀다.

문무대왕릉 내부와 인공수로. 사진자료=한국민족문화재백과사전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했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혀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다.
특히, 동쪽으로 나 있는 수로는 파도를 따라 들어오는 바닷물이 외부에 부딪쳐 수로를 따라 들어오고 나감으로써 큰 파도가 쳐도 안쪽의 공간에는 바다 수면이 항상 잔잔하게 유지되게 되어 있다. 이 안쪽의 공간은 비교적 넓은 수면이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하고도 큰 돌이 놓여 있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다.

문무대왕릉 내부. 사진자료=한국민족문화재백과사전
문무대왕릉. 사진=우성윤

문무대왕릉은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 가운데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자연 바위이다. 남쪽으로 보다 작은 바위가 이어져 있으며, 둘레에는 썰물일 때만 보이는 작은 바위들이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어 마치 호석처럼 보인다.

기자는 여러 번 경주 여행을 했지만 이번 여행에 처음으로 답사를 하고 죽어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왕의 뜻이 새롭게 다가왔다.

왕을 즐겁게 하려는 듯 물새들이 날고 있다. 사진=우성윤

 

우성윤 기자의 경험거래소 서비스

우성윤 기자
우성윤 기자
현재 고양시니어신문 기자, 숲해설가와 문화해설가(궁궐해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은행에서 30년 근무 했고, 전쟁기념관 도슨트, 성남문화해설사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세요.

인기기사